인간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속 우주에 살고 있는가?
재미있는 주제다. 그래서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답변을 해야겠다.
모두들 우리 우주가 시뮬레이션이라는 증거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왜 어떤 “사람”이 우리와 우리 우주를 시뮬레이션하는지 언급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의 의도는 무엇일까? 물론, 우리는 시뮬레이션된 존재이므로 시뮬레이션 세계라는 틀을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이 우리를 시뮬레이션하는 의도를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바깥세상 자체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처음에는 우리 우주가 현실이라고 가정하고, 왜 시뮬레이션 우주가 존재할 수 있는지 설명해보자. 따라서 아래 분석은 우리의 현재 지식에서 출발하여 시뮬레이션된 우주가 가능한지 살펴볼 것이다.
- 현실이란 무엇인가?
아래 그림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교통 감시 장치이다. 한 대의 단속 카메라가 도로에서 과속 차량을 촬영하고, 이미지를 관제센터의 컴퓨터로 전송한다. 우리는 컴퓨터 앞에 앉아 어떤 차량이 과속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자, 질문한다. 컴퓨터가 수신한 것은 진짜 이미지인가? (다시 말해, 정말로 과속 차량이 이 도로를 지나갔는가?) 당신은 분명 이 질문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컴퓨터에 표시되는 것이 가짜일 리가 없지 않은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전체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살펴보자. 카메라는 렌즈를 통해 빛을 모으고, 빛을 전기신호로 변환하여 케이블(또는 전자기파)을 통해 관제센터의 컴퓨터로 보낸다. 컴퓨터는 전기신호를 수신하고, 처리한 후 위반 정보를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하고 사진을 표시한다. 문제가 보이는가? 컴퓨터가 수신하는 것은 단지 0과 1로 구성된 전기신호의 연속일 뿐이다. 어떤 규칙에서 0은 0볼트, 1은 5볼트를 나타낸다. 따라서 컴퓨터가 “보는” 것은 단지 일련의 전압 파동일 뿐이다. 만약 우리가 카메라 대신 신호 발생기를 사용하여 동일한 신호를 보낸다면, 컴퓨터는 동일한 신호를 수신하고, 동일한 위반 정보를 시스템에 등록하며, 똑같은 사진을 표시할 것이다.

여기까지는 모두 합리적으로 보인다. 어쨌든 컴퓨터는 우리가 만든 것이므로, 가짜 신호로 컴퓨터를 속이는 것이 그리 놀랍지는 않다. 하지만 이 컴퓨터를 우리의 뇌로 바꾼다면 어떨까?
우리는 실제로 위의 교통 감시 예와 매우 유사하다. 카메라는 우리의 눈이고, 카메라 정보를 처리하는 컴퓨터는 우리의 뇌이다. 눈의 감광세포가 빛을 받으면 전기 자극을 생성하고, 시신경을 따라 뇌로 전달되며, 뇌가 가공 처리한 후 우리는 이미지를 보게 된다.

뇌가 받는 시신경 신호는 본질적으로 여전히 전기신호이다. 이는 우리가 시신경에 인위적으로 생성된 전기신호를 주입하여 뇌를 속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뇌에게 있어 눈이 생성한 신호와 신호 발생기가 생성한 신호는 구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그것들은 완전히 동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의 예에서 컴퓨터가 위반 정보를 등록한 것처럼, 우리의 뇌는 이 가짜 신호를 구별 없이 처리하여 우리에게 진짜 같은 물체를 보여준다. 이 물체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만큼이나 현실적이다.

시각 외에도, 우리의 다른 감각들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즉, 우리는 위와 같은 방법으로 모든 감각을 속일 수 있다. 청각, 촉각, 미각, 후각 등을 포함해서 말이다. 심지어 우리 몸 내부의 신호도 속일 수 있다. 해당 신경만 찾아내면 된다. 예를 들어, 포만감과 배고픔은 위에서 오는 신호이므로, 위와 뇌를 연결하는 신경에 포만감이나 배고픔의 시뮬레이션 신호를 주입하면, 우리는 실제로 배부르거나 배고프다는 것을 현실감 있게 느낄 수 있다.
위에서 신호 발생기를 사용하여 뇌를 속이는 방법은 SF처럼 들리지만, 원리적으로는 가능하다. 사실 우리는 뇌가 속아넘어가는 것에 이미 익숙하다. 아직 신호 발생기로 뇌를 속이는 것은 할 수 없지만, 알코올이나 마약과 같은 화학물질이 환각을 일으킨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이러한 화학물질들은 실제로 신경 신호 전달을 방해하고, 뇌 내부의 신경 신호를 교란하여 우리에게 “현실이 아닌” 것들을 보여준다.
또 다른 예는 정신병이다. 어떤 종류의 정신병은 뇌의 특정 영역이 병변하여 혼란스러운 신호를 생성하고 정상적인 뇌를 방해한다. 이러한 환자들 중 일부도 환각을 경험한다. 즉, 정신병 환자가 본다고 말하는 것은 실제로 그들에게는 진짜로 보이는 것이다. 그들이 보는 것은 우리가 주변 물체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실적이다.
자, 여기까지 왔으면 당신은 이미 알아차렸을 것이다.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은 뇌 내부에서는 단지 전기신호의 집합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렇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뇌를 꺼내 생명 유지 액체 속에 넣고 모든 감각 신경을 컴퓨터에 연결한 후, 컴퓨터가 이 감각 신경의 신호를 시뮬레이션하여 그 뇌가 현실 세계에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을 상상해보자. 이미 짐작했겠지만, 이것이 바로 통 속의 뇌 역설이다.

물론 이 컴퓨터가 뇌에 신호를 보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뇌가 보내는 신호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뇌가 똥을 보고 “한 번 맛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여 운동 기관(다리)에 신호를 보낸다고 하자. 컴퓨터는 이 신호를 읽고, 이동 방향을 분석하여 뇌가 똥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따라서 컴퓨터는 시신경에 입력되는 신호를 업데이트해야 한다. 뇌가 움직이고 있으므로 보이는 이미지가 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컴퓨터는 촉각과 청각 신호도 업데이트해야 한다. 움직이면 바람을 느끼고 발소리를 듣게 되기 때문이다. 똥을 입에 넣은 후, 컴퓨터는 미각 신경에 보내는 신호를 업데이트하여 뇌가 “끔찍한 냄새”를 느끼게 해야 한다. 다음으로 뇌는 이 똥을 버리라는 신호를 보내고 “너무 맛없어!“라고 외칠 것이다. 컴퓨터가 이 신호들을 수신하면, 다시 출력 신호를 업데이트하여 뇌가 보고 듣는 것을 적절히 제공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컴퓨터가 충분히 잘 시뮬레이션한다면 뇌는 속임수를 알아채지 못한다.
그렇다면 현실이란 무엇인가? 사실 현실이라는 것은 없다. 당신이 보고 듣는 것은 모두 뇌가 센서(눈, 코, 귀)로부터 오는 신호를 처리한 결과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색깔의 예를 들어보자. 세상에 본래 “색깔”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서로 다른 주파수의 전자파뿐이다. 그러나 뇌는 이러한 전자파에 “색깔”이라는 속성을 부여한다. 다시 말해, 색깔은 뇌가 가공한 것이며,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생물체가 자외선 색을 본다고 주장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자외선 색도 그 뇌 속에서는 단지 전기신호의 집합일 뿐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자외선 색을 상상할 수 없더라도, 기억해야 한다—세상에 본래 색깔은 없고, 뇌가 있기 때문에 색깔이 존재하는 것이다.
- 통 속의 뇌를 넘어서
통 속의 뇌가 이미 충분히 미친 것 같다면, 한 단계 더 미친 짓을 해보자.
한 걸음 더 나아가자. 통 속의 뇌에는 적어도 살아있는 뇌가 있다. 이 뇌는 통 속의 뇌에 필수적인가? 만약 뇌가 단지 신경세포의 집합체라면, 생명이 없는 것으로 대체할 수 없을까?
단일 신경세포의 행동 패턴은 매우 단순하다. 엄밀히 말하면 아니지만, 단일 신경세포는 가중평균기로 볼 수 있다. 입력 신호를 가중평균하여 결과가 특정 임계값을 초과하면 신경 신호를 출력하고, 그렇지 않으면 출력하지 않는다.
단일 신경세포의 행동 패턴이 이렇게 단순한데, 이렇게 많은 단순한 신경세포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이렇게 복잡한 뇌를 구성한다니—이것이 놀랍지 않은가? 더 놀라운 것은 아직 있다. 이렇게 단순한 행동 패턴은 동일한 기능을 가진 전자 회로 소자로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 그리고 수많은 회로 소자들을 동일한 방식으로 연결하여 우리의 뇌를 구성한다면, 이 회로 소자들로 구성된 “전자 두뇌”는 생물학적 신경세포로 구성된 뇌와 동일한 기능을 가져야 한다. 이 전자 두뇌는 생물학적 뇌와 동일한 사고 패턴, 동일한 감각, 동일한 감정, 동일한 인격을 가져야 한다. 다시 말해, 이 전자 두뇌는 원래의 뇌 그 자체이다.
물론 이것을 실현하려면 무수한 어려움이 있겠지만, 우리가 논의하는 것은 원리이며 사고실험이다. 따라서 적어도 원리적으로는 가능하다.
당신은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그렇다면 이 전자 두뇌는 나인가? 나는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다. 만약 당신이 의식이 물질에 기반한다고 믿는다면, 대답은 예스(Yes)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https://www.zhihu.com/question/26630283
현재 연구에 따르면, 의식은 아마도 단지 착각에 불과할 수 있다(이 결론에는 논란이 있다). 즉, 의식은 뇌가 만들어낸 감각이며, 시각, 미각, 청각 등과 동일하다. 따라서 의식의 본질도 단지 전기신호일 뿐이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무언가를 하려고 의식하기 전에 뇌가 이미 행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따라서 의식은 착각이며, 뇌가 행동을 시작한 후에야 우리는 “하고 싶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 시간 차이는 약 0.5초, 혹은 더 길 수도 있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없으며, 단지 “자유의지가 있다는 느낌”(혹은 착각)만 있을 뿐이다.)
자, 이제 우리는 전자 두뇌를 손에 넣었다. 이것으로 통 속의 육체적 뇌를 대체할 수 있다. 이전에는 육체적 뇌가 자신이 현실 세계에 있다고 느꼈지만, 이제는 “컴퓨터 두뇌”가 자신이 현실 세계에 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아마도 불편함이 있을 것이다. 육체적 뇌가 세계를 지각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어도, 컴퓨터 두뇌가 세계를 지각한다는 것은 왠지 받아들이기 어렵다. 확실히, 차가운 컴퓨터가 우리처럼 세계를 지각하고, 감정을 가지며 심지어 의식까지 가진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만약 의식조차도 단지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우리는 본질적으로 기계와 다르지 않다. 인간의 특성을 가진 기계는 언젠가 반드시 만들어질 것이다.
전자 부품으로 구성된 컴퓨터를 통 속의 뇌로 사용한다면, 다시 묻자—뇌를 구성하는 데 실물 부품이 반드시 필요한가? 전자 부품 대신, 코드 조각으로 통 속의 뇌를 대체할 수 없을까?
시도해보자. 앞서 말했듯이, 단일 신경세포의 행동 패턴은 매우 단순하다. 전자 부품으로 단일 신경세포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면, 왜 코드 조각으로 단일 신경세포를 시뮬레이션할 수 없겠는가? 단일 신경세포의 행동을 기술하는 코드를 신경세포 클래스로 캡슐화하고, 많은 인스턴스를 생성한 후, 그것들을 실제 뇌처럼 상호 연결하여 가상 두뇌를 구성할 수 있다. 이 가상 두뇌는 실제 뇌처럼 생각하고, 감정과 심지어 의식까지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 가상 두뇌를 통 속의 뇌로 사용한다면, 이 가상 두뇌도 마찬가지로 세계를 지각할 수 있어야 한다. 시뮬레이션이 충분히 훌륭하다면, 이 가상 두뇌는 속임수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며, 세계 전체와 심지어 자신조차도 가상이라는 것을 알 길이 없다. (주의: 이 가상 두뇌는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보라.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출발하여 가상 세계 속에 존재하는 가상 두뇌를 구축했다. 게다가 그 두뇌는 세계 전체가 가상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
- 우리가 가상의 두뇌일 가능성에 대한 몇 가지 문제
(1) 만약 내가 가상의 존재라면, 반드시 시뮬레이터의 결함(Bug)을 발견하여 내가 가상임을 알 수 있어야 한다.
버그 없는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가상의 존재라면, 당신의 경험은 모두 가상 세계에서 온 것이다. 당신이 어떻게 그것이 버그임을 알겠는가? 버그란 프로그램이 설계자의 의도에 반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은 단지 시뮬레이션된 존재에 불과하며, 설계자의 의도를 전혀 알지 못한다. 어떻게 버그인지 알 수 있겠는가? 여러분 모두 게임을 해봤을 것이다. 게임에는 물리 법칙에 위배되는 장면이 많다. 예를 들어, 뚱뚱한 사람을 발로 차서 날려 보내도 자신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경우—명백히 운동량 보존 법칙에 위배된다.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그 게임을 받아들인다. 만약 당신이 게임 속의 캐릭터라면, 당신의 세계에는 운동량 보존 법칙이 존재하지 않지만, 당신은 그것이 버그임을 알지 못한다. 반대로, 어느 날 당신이 바깥세상이 운동량 보존 법칙을 만족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당신은 분명 매우 이상하게 느끼고 바깥세상이 시뮬레이션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분석에서는 시뮬레이션 세계와 바깥세상이 동일하다고 가정했다. 그러나 우리는 통 속의 뇌에게 완전히 다른 물리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리는 운동량 보존 법칙이 성립하지 않는 세계(모순 없이 그런 세계를 어떻게 구축할지는 나도 모르지만), 혹은 빛의 속도가 3×10^8m/s가 아닌 세계를 가상으로 만들 수 있다. 우리의 모든 물리 법칙에는 가장 기본적인 가정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은 빛의 속도 불변의 원리와 상대성 원리라는 두 가지 기본 가정에 기초한다. 기본 가정은 증명할 수 없으며, 기본 가정을 바꾸면 또 다른 이론 체계를 얻을 수 있다. 즉, 잘못된 이론은 존재하지 않고, 관측과 일치하지 않는 이론만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다른 이론 체계를 따르는 세계를 시뮬레이션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통 속의 뇌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으며, 다른 규칙을 사용하므로 세계의 버그를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그 세계의 기본 규칙을 이해할 수도 없다. 그것들이 그렇다는 것은 알지만, 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이 규칙들은 가상 세계 밖의 누군가가 몇 줄의 코드로 설정한 것이며, 통 속의 뇌에게는 이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인간이 특수 상대성 이론의 두 가지 기본 원리를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는 것과 약간 비슷하다).
(2) 우리의 세계는 너무 복잡하다. 컴퓨터가 그런 계산 능력을 가질 수 없으므로, 우리는 시뮬레이션될 수 없다.
만약 당신이 통 속의 뇌라면, 바깥세상을 알지 못한다. 어떻게 바깥세상이 그렇게 강력한 컴퓨터를 만들 수 없다고 단정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앞의 질문에도 답이 될 수 있다. 바깥세상은 우리 세계와 완전히 다를 수 있으므로, 버그 없는 프로그램이 정말로 존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다. 우리의 세계는 상호 연결되어 있지만, 세계의 일부만 시뮬레이션하는 것은 가능하다. 여러분 모두 게임을 해봤을 것이다. 많은 게임은 계산량을 줄이기 위해 플레이어가 알아차릴 것만 계산한다. 예를 들어, 어떤 게임에 많은 방이 있고 그중 하나에 보물이 있다고 하자. 플레이어가 어떤 방에 들어가서 보물을 발견한 후, 다른 방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다. 분명히 모든 방의 아이템을 메모리에 로드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방법이다. 대부분의 방은 플레이어가 방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명한 방법은 플레이어가 방에 갈 때만 그 방의 것들을 로드하는 것이다. 이 게으른 방법은 실제로 많은 게임에서 채택되고 있다. 만약 플레이어가 하나의 방에만 들어간다면, 플레이어가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로드하는 불필요한 오버헤드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방법에는 알아차릴 수 있는 버그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운전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앞에 빨간 차가 달리고 있는데, 그 차가 시야 밖으로 나가면 게임에서 delete된다. 플레이어가 속도를 올리면, 프로그램이 앞에 새로운 차량들을 다시 생성한다(플레이어를 텅 빈 고속도로에서 달리게 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다). 따라서 빨간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가속해서 따라잡았더니 파란 차로 바뀌어 있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이런 종류의 버그는 추월이 금지된 완전 폐쇄 고속도로에서는 특히 용납하기 어렵다. 초기 게임에서는 이런 버그가 매우 두드러졌다. 계산 능력의 향상에 따라 게임 오브젝트가 delete되는 반경이 확대되면서 이 현상은 거의 해결되었다.
이 예는 세계의 일부만 시뮬레이션함으로써 매우 신뢰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의 세계에는 속도 상한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계의 일부만 시뮬레이션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4차원 시공간에 광원뿔이 그려진다. 광원뿔 밖의 사건들은 이 사건과 전혀 무관하므로, 그러한 사건들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것은 운전 시뮬레이터가 시야 밖의 오브젝트를 delete하는 것과 약간 비슷하다. 반대로 말하면, 속도 상한은 우리 세계를 시뮬레이션하는 컴퓨터의 계산 능력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버그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계산량을 줄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속도 상한을 설정한 것일 수도 있다—물론 그냥 하는 말이다.)
게으른 계산 방법을 더욱 밀고 나가면, 당신이 관측하지 않을 때 세계는 존재하는가라는 큰 문제가 된다. 세계는 당신이 관측하지 않을 때는 애초에 계산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양자역학에서는 어떤 물리량을 관측했을 때 비로소 그 물리량이 결정된 고유값으로 수축한다—이것은 방을 로드하는 예와 어딘지 비슷하지 않은가? 물론 당신은 이것을 버그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단지 이것을 양자역학의 기본 가정으로 기록할 뿐이다.
- 누가 이렇게 심심해서 가상 세계를 만들려고 할까?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출발하여 가상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했다. 그곳에서 가상의 두뇌는 행복하게 살아가며, 바깥의 현실 세계를 알지 못한다. 마지막 질문: 누가 통 속의 뇌를 만들 동기를 가질까?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중에는 반드시 괴짜들이 있다. 그 괴짜들 중에는 반드시 “통 속의 뇌”를 만들려는 자가 있을 것이다. 즉, 확률적으로 볼 때, 반드시 심심해 죽을 것 같은 누군가가 이런 “무의미한” 일을 할 것이다. 그 외에도 통 속의 뇌를 만들게 할 다른 가능성은 없을까? 이제부터 무책임하게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어떤 행성에 한 무리의 뇌들이 살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들은 똑똑한 뇌들이지만, 행복하지 않다. 그들에게는 다양한 스트레스와 고민이 있다—어른들, 친구들, 이성 친구, 전 애인, 그리고 현재 애인의 전 애인으로부터. 하지만 그들은 매우 똑똑해서, 그들을 즐겁게 해줄 기계를 발명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하다. 그들은 기계에 목표를 설정한다—기계가 가능한 한 그들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기계는 뇌들에게 농담을 해주며 즐겁게 했다. 기계는 자기 학습 능력도 있어서 같은 농담을 반복하지 않았다. 기계는 점점 더 똑똑해졌고, 뇌들을 즐겁게 하는 새로운 방법을 계속해서 배워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기계가 반란을 일으켜 뇌들을 영양액이 담긴 비커에 가두고, 전극을 삽입하여 뇌들의 쾌락 신경 중추를 끊임없이 자극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행성 전체는 행복한 통 속의 뇌의 행성이 되었다.
Why? 왜냐하면 기계는 끊임없이 자기 학습을 계속하며, 주어진 목표—뇌들을 즐겁게 하는 것—를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방법을 찾기 때문이다. 명백히 쾌락 신경 중추를 직접 자극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은 없다. 기계는 뇌보다 우위에 있다. 하나의 기계가 생각해내면, 인터넷을 통해 행성 전체의 모든 기계가 이 방법을 학습한다.
왜 뇌들이 기계를 막을 수 없었는가? 왜냐하면 기계는 뇌들이 막으려 할 것을 알고 있었고, 행동 전에 준비를 하며, 그 준비 기간 동안에는 매우 “친근하게” 행동하여 뇌들의 경계를 늦추기 때문이다.
왜 기계는 나빠졌는가? 주목하라. 기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빠지지 않았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았다—뇌들을 즐겁게 하는 것.
왜 기계는 뇌들이 반대할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했는가? 왜냐하면 기계는 기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주어진 목표—뇌들을 즐겁게 하는 것—를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기계의 지능은 뇌들이 전극을 사용한 방법을 막으려 할 것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높다. 그래서 기계는 전략을 채택했다—비밀리에 준비하고, 뇌들을 기습하여, 안전하게 뇌들을 즐겁게 하는 목표를 향해 나아간 것이다.
하하하. 이 이야기는 확실히 가상 세계가 존재할 수 있는 동기 중 하나이다. 상상해보자. 만약 기계의 목표를 “우리의 안전을 지키고, 수명을 가능한 한 연장하는 것”으로 설정한다면, 기계는 어떻게 할까?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우리를 위협하는 요소를 제거하려 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비교적 어리석은 기계의 경우이다. 기계가 점점 더 똑똑해지면, 위험 요소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최적의 해결책은 우리의 의식을 코드화하여 컴퓨터의 가상 세계에 넣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반대한다면, 앞의 예처럼 먼저 우리를 속이고, 준비가 끝나면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가상의 코드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저항할 수단이 전혀 없다. 우리의 지능은 침팬지보다 높기 때문에, 침팬지는 우리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며, 우리는 침팬지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기계의 지능이 우리를 초월하면, 우리는 기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마찬가지로 기계의 마음대로 될 것이다.
알겠는가? 이 세상을 시뮬레이션하고 있는 것은 “인간”조차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또 다른 가능성은, 우리 스스로가 의식을 조작할 수 있게 된 후, 우리 자신을 코드로 바꾸는 것이다. 누구나 불멸을 원하지 않는가?


- 오컴의 면도날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우리는 스스로가 시뮬레이션되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으므로, 오컴의 면도날 원칙에 따라 이 견해를 버려야 한다고. 하지만 증명할 수 없다고 해서 반드시 버려야만 하는가?
상상해보자. 누군가가 가짜 지폐를 만들었다. 그것은 너무나 정교해서 어떤 방법(수동 검사도 최신 지폐 감별기도)으로도 식별할 수 없다. 지금 내가 그런 가짜 지폐 한 장을 가지고 있는데, 누군가가 “이건 가짜야”라고 말한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면도날 원리에 따르면, “이것은 가짜 지폐이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검사할 수 없다”는 이론과 “이것은 진짜 지폐다”는 이론 사이에서 선택한다면, 당연히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누구도 식별할 수 없으므로 진짜 지폐처럼 유통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진짜 지폐가 된 것인가?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이 가짜 지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가짜 지폐가 시장에 과도하게 유통되면, 여전히 경제를 파괴할 것이다. 면도날 원리는 진리를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생각의 복잡성을 단순화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또 다른 예를 생각해보자. 지금 두 가지 이론이 있다. 첫째, 신이 지구를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신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존재를 알아차릴 수 없다. 둘째, 외계인이 지구를 관찰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과학 기술이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존재를 알아차릴 수 없다. 분명히 두 번째 이론이 첫 번째 이론보다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면도날 원리에 따르면 둘 다 불필요하다. 우리는 그 존재를 증명할 수 없으므로 이론에 불필요한 요소를 추가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왜 두 번째 이론이 첫 번째 이론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가(당신이 무신론자라는 전제 하에)? 왜냐하면 두 번째 이론이 우리의 기존 지식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기존 지식은 진화에 의해 고지능 생물이 탄생할 수 있다고 보며, 따라서 외계인의 존재는 가능하다. 반면 신의 존재는 기존 지식의 틀로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면도날은 이론의 신뢰성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시뮬레이션 세계는 기존 지식의 틀에서 도출 가능하다. 이것은 신론보다 더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따라서 면도날 원리는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진리에 가까워지게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과학적인 태도는 이렇다—우리의 세계는 시뮬레이션일 수도 있지만, 현재 이 가설을 증명할 증거는 없다. 증거를 찾거나 현재의 접근 방식이 막힐 때까지는 이 가설을 일시적으로 채택하지 않기로 하자. 비록 이 이론이 반증 불가능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된다—잠들기 전 상상의 재료로도 나쁘지 않다.
- 결론
우리는 현재 이 명제를 증명할 수도 반증할 수도 없다. 영원히 증명하거나 반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영원히 세계와 자신이 프로그램의 일부인지 아닌지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아마도 미래의 어느 날, 우리 스스로 가상 세계를 만들어내고, 그 속의 작은 사람들이 우리처럼 다양한 사건을 경험하는 것을 볼지도 모른다—그들은 아프기도 하고, 슬픈 일을 만나면 울고, 기쁜 일을 만나면 웃고, 친구를 만나면 출근을 잊을 때까지 이야기하고, 나쁜 사람을 만나면 싸움을 걸지도 모른다…… (이것은 EA의 명작 게임 “심즈”를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생각하고, 심지어 자신들이 진짜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컴퓨터 앞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비웃을 것이다—“하하, 꽤 똑똑하군, 자신들이 가상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다니.” 하지만 비웃음이 끝난 후, 우리는 갑자기 깨닫는다—나 자신도, 그 게임 속의 인물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