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년 전에 이미 정립된 미적분학, 왜 오늘날에도 여전히 배우기 어려운가?
당신은 이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타원의 넓이나 변하는 힘이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그런 개념들이 실제로 눈에 보이고 손에 닿는 응용이 무엇인지 더 궁금해한다. 당신에게는 학습 동기가 부족하다.
하지만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미적분학을 창시했을 때, 그들은 정말로 그 시대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했다. 그들에게는 강력한 동기가 있었다. 생산 현장에서 불규칙한 도형의 넓이를 처리하거나 적분 원리를 적용해야 하는 상황은 어디에나 있었지만, 수학은 여전히 ’상수(常數)의 시대’에 머물러 있어 이런 기본적인 미적분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했다. 이것은 그 시대 수학의 ’수치’나 다름없었다. 동시에 당시에는 극한의 개념이 이미 성숙해가고 있었다. 설령 뉴턴, 라이프니츠, 오일러 등이 없었다 해도 다른 누군가가 e^x 함수의 그래프 아래 면적을 구하는 방법, 최속강선(最速降線) 방정식을 유도하는 방법, 유체의 성질을 연구하기 위한 유체역학 방정식을 세우는 방법을 알려주는 방법론을 반드시 정립했을 것이다. 이것은 인류 문명 발전과 진보의 필연적인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수많은 위대한 과학적 문제들이 존재한다. 순수 수학의 수많은 추측들, 우주론에서의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탐구, 상대성 이론과 양자장론을 통일하려는 시도, 산업 현장에서 유체의 난류 현상은 여전히 제대로 된 수학적 기술(記述)을 갖추지 못했고, 딥러닝의 설명 가능성은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등등,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산업혁명 이전의 사람들이 전원목가(田園牧歌) 시대를 당연하게 여겼던 것처럼, 지금의 과학기술 수준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그들은 머리 위의 별하늘을 바라보지 않으며, 미래에 대한 동경과 상상을 품지 않는다. 어느 시대든 소수의 과학적 위인들이 자신의 탐구욕으로 그 시대 과학 인식의 한계를 끊임없이 돌파해왔다.
이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은 뉴턴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 지식의 양은 훨씬 많지만, 사고의 지평에 있어서는 큰 변화가 있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 시대의 대학생들이 고등수학을 공부할 때 느끼는 것은 단지 ‘너무 어렵다’, ’못하겠다’는 것뿐이다. 그들은 과학의 선현(先賢)들이 미지의 영역에 대해 가졌던 강렬한 탐구욕과 정복욕을 체감하지 못한다. 이러한 욕망들이 그들로 하여금 몇 년, 몇십 년, 심지어 평생을 바쳐 하나의 이론을 정립하고 완성하게 만든 것이다. 평범한 사람과 위인 사이의 격차는 정말로 단지 지능의 차이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사고의 경지와 동기의 차이인 것이다.